지옥의경주 17일밤...
경주 본부 시각 16시 20분.분홍색 모래산 공격
아무리 보아도 마녀들이 골짜기 어디쯤 살고 있을
것 같은 환상적인 분홍색의 모래산이다.
오르다 물러나기를 3번째,산 마루턱 왼편의 십여미터를 넘지 못하고
차는 심장이 터지는 소리를 내며 헛바퀴질만 했다.
우리는 다시 물러가 공격하는 것을 포기하고 지표를 삽으로 고르고
장비를 풀어 받침대와 담요 깔개를 깔기로 했다.
"제기랄,창녀같은 년...." "부따나...퓨딴,퓨딴..."
앳굿은 차를 욕을하며 발로 걷어 찼다.
'...힘 아껴,임마...성깔 부리지 말고...'
시모나의 빈정거림이 더 얄밉다.
'허기야 하루에 몇번씩이나 그녀(차,elle) 밑으로 기어 들어가
담요를 깔고... 폈다 접었다하니 창녀가 아니라 창남...그래..
창남 맞아, 우리가 말이야...염병 할...'
경주본부시각 17시35분. 한시간 동안 분홍색 모래를 퍼내고 담요를
깔아가며 사투를 벌린 후 산 등성이까지 차를 올려 놓은 우리는
이 산에 보호색을 하고 사는 분홍색 파충류가 되어 있었다.
종일 얼굴에 이글거리던 해가 먼 지평선에 걸려있었고,그쪽으로
등성이에서 조그만 어깨 숨을 고르고 있는 시모나가 목각으로 된
티벹 승려처럼 새카맣게 앉아 가엾어 보인다.
나는 속으로 빠리에 살아 돌아가면 시모나를 엘리제 궁옆에 있는
최고의 식당 "멕심"에같이가 그가 좋아하는 'Fruit de Mer'(생굴과 조개,게 일품요리)를 알자스산 백포도주로 초대해 위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먼지 가득한 입에 침이 고였다.
'바보,죽을 줄도 모르는 놈이 이 먼 곳에서 그런 호화로운 저녁을
빠리에서 생각하다니...'
612km. 기적같이 잘 참고 견디던 차가 기어이 터지고 말았다.
라디에이터로 이어지는 고무 튜브가 터지며 폭발했다.
우리는 차 앞덮개를 열어 놓고 뜨거운 물과 김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낙담한채 차 벽에 기대 주저 앉았다.
우리가 가야 할 쪽으로 해는 뉘엇뉘엇 지고,길없는 암담한 사막,
노을빛이 잔인하다.
바스티스를 물에타 한잔씩하고 나 우리는 라디에이터를
통채로 뜯어 냈다. 냉각장치 틈새마다 모래먼지로 엉겨붙어 있었다.
접촉이 않좋았던 배터리도 들어 내었다.
엔진 점화 초크도 뜯어내었다.
해는 언제 넘어 갔는지 어둠이 우리들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헤드라이터를 머리에 쓰고 있는 시모나의 분홍분칠 얼굴 위에
샛까만 기름 떼가 어느새 범벅이 되어있었다.
정말 못 생긴 몰골이다. 웃음이 터져나왔지만 참았다.
나는 짖굿게 시모나 턱을 불빛쪽으로 살짝 들어보며
"...여- 임마...이제보니 너,잘 생겼구나...분홍색 분칠에,검은..."
'...너 미쳤구나,이제...'시모나는 나의 팔을 틀쳐내며 고함질렀다.
'넌 임마,경주 끝나면 세네갈에 남아 다카르 정신병원에서 고치고
와야겠다. ...이대로 빠리가는 건 안돼,임마...'
밤 10시가 넘었다.
먼지가 엉겨 붙어있는 라디에이터가 일을 더디게 하고있다.
우리는 하던 일을 말고, 커피를 끓이고 비상 통조림과 마른 빵으로
저녁을 먹었다. 이 사막판에서 온갖 것들을 다 풀어 헤쳐 놓고
이 꼴이 무어란 말인가.
언젠가 이곳 사막판에서 사라져 버린 쌩떽쥐베리가 연장 가방을
들고 어린 왕자를 데리고 좀 와 주었으면 좋으련만...
아니 지쳐 빠진 내게 몸이 무겁지 않은 손까락만한 어린 공주가
나타나 모기소리같은 작은 말이라도 걸어 주었음 좋겠다.
달은 하늘 높이 두둥실 떠 있고 은빛 천지, 몽롱한 정신은
초롱초롱 금방 떨어 질 것 같은 별을 하나쯤 받으려고....
이 밤새 기다리고 싶다.
힘들고 외로운 이곳으로 누군가 아무나 와 주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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