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가 깊으면 저단 고회전 RPM 장시간 주행으로 많은 차들이 엔진 과열로 불이 났다.
(잡지사 기자에게서 사진 원본을 돌려받지 못해,해상도 떨어지는 사진 올림을 죄송....최종림)
1월 11일. 아가데즈(Agadez) 맑음.
오늘은 22일 간의 장정 중 쉬는 날이다.
아니, 그 동안 조난당하고 사고난 것들을 중간 수습하는 날이다.
엊그제, 9일날 돌아오지 않은 차들 중 6대는 완전히 사막으로 사라져 버렸고,
수많은 사고자들은 응급 조치와 수술을 하여 유럽으로 후송되었다.
오늘 아침 현재, 37대의 차가 어제 코스에서 귀환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 동안의 각종 사고와 낙오로 우리들 대열에서 빠진 차가 백여대를 넘고 있다.
정확한 집계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난리 와중에도 나는 이곳, 아가데즈 읍 최고 큰 호텔에서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어제 밤 마의 계곡, 장장 500여km의 마른강 바닥을 주파해 낸 일은 지금도 끔직하여
소름이 돋지만,유럽에서 랠리경주를 해 온 나의 경주 경력에 하나의 금자탑을 쌓은 기분이다.
내가 그 동안 해 온 3,4일씩의 랠리대회는 그것도 매번 생명을 건 것이었지만, 그건 동네경주다.
이 지독한 경주에 비하면 말이다....경주 코스도 그렇고 마른 강에 인접한 토인부족들의
마을을 콩알이 되버린 간으로 밤새워 지나온 일은,웃지도 후회 할 수도 없는 처절한 그대로
내 인생의 한 이정표로 남을 것이었다.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시모나와 내가 택한, 갈려진 와디의 코스는 가장 험준했던 것으로
밀가루같은 강바닥 모래는 좁은 강폭이 모자라 하늘로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보이지않는
짙은 먼지와 길고 긴 밤으로의 여로는...차라리 지금도 꿈이었으면 좋겠다.
아직 그 강바닥 굽이 굽이를 빠져 나오지 못 한 차들을 생각하며
그래도 HOTEL이라는 간판이 붙은 황토 벽으로 된 집에 누워있음이 을씨년스럽다.
뒷간 같은 샤워장이었지만 뜨거운 물이 나왔다.
모래바닥이 아닌 침대에서 잠도 자고...파리를 떠나 처음 맛보는 문화 회귀의 행복감에 젖었다.
어제의 와디 500여km포함 885km 경주 코스를 오늘 새벽 4시 43분까지 주파해 낸 일이 남의 일같다.
지금 기분 같아서는 그 험난한 야간 주행은 다시는 해낼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곧 말리를 넘어가게 되면 그곳에서 다시 모리타니아다.
서쪽으로,서쪽으로 해만 쳐다보며 나침판 270도 부근을 헤매야하는 횡단코스다.
특히, 모리타니아의 사하라 횡단 3코스는 마의 코스로 칭하는 곳으로 이 대회의 절정을 이룬다.
갈수록 험난해지는 여정, 나는 어디만치에서 내 차와 내가 주저앉을 것인가,
상상이라도 생각해 보기를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우리의 체력, 차의 메커니즘, 순간의 지형과 속도, 전복...조난…
그 모든 것을 다 해결해 낸다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나는 가리라,다카르까지...
기필코 아프리카 서해안,대서양에서 내 몸을 적시리라.
일본 사람이나 구미 사람들과의 경쟁 문제가 아니다.
야심차고 공격적으로 끓는 한국인 내 피와 거만함을, 그 무엇도 꺾은 적이 없었는데.....,
이 욕망의 불덩어리가 메커니즘과 원시 속에 남은 이 만리 길을 못가고 주저 앉아야 한다면,
그것이 문제다. 병약한 햄릿의 죽느냐,사느냐같은 그런 문제가 아니다.
나는 오후 내내 애써 잡념을 물리치고, 정성 들여 차의 모든 부분을
보조 트럭 요원들과 정비하고 물로 닦아 냈다.
그리고나서 해질 무렵, 읍내 난장판 시장 구경을 나갔다. 시내의 집들은 대부분 토담집으로,
길 쪽으로 나들이 문 하나 뿐, 창이 없었다.
작은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선물을 달라고 하고,
키 크고 새카만 사람들이 큰 칼들을 가지고 다니며 반 강요로 물건을 사라고 할 때는
자못 경계심이 갔다.
더구나 시모나는 이 난장판 속의 으슥한 골목으로 한참 돌아 들어가
민속 액세서리 가게로 나를 데리고 갔다.
묘하게 서로 고함을 지르며값을 흥정하고있다.그리고 부르는 게 값이고 깎는 게 값이었다.
이곳 처녀들이 시집갈 때 목에 찬다는 아가데즈 수호신 목걸이를
몇 개 고르고 있는 나를 시모나가 가로막았다.
“이 촌놈 가만있어...임마, 내가 흥정할 테니 넌 호주머니나 조심하고 있으렴….”
그리고 그는 가지고 온 헌 옷과 약을 주인이 고개를 흔들 때마다 한점한점씩
더 꺼내 얺어 놓으며 물물교환을 했다.나는 히안한 광경에 시모나의 코털 얼굴만 쳐다봤다.
우리가 가지고 간 헌 옷은 그들에겐 평생 입을 한 재산이다.
신기한 흥정 싸움을 끝내고 물건을 내게 건네주는 시모나의 이마에선 땀방울이 흘렀다.
그리고 그는 골목 몇개를 지나 나와 함께 이곳에 사는 자기 옛 친구 집으로 갔다.
(다음 연재에 계속..)
우리가 유일하게 하루 경주를 쉬는 아가데즈 마을에 대상의 무리들도 도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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