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원시 부족 마을에는 추장의 절대적 권위가 있고 경주 중 우리 차는 그들 지역을 지날 때 각별히 조심했다. 추장이 야간 주행 중인 우리 차를 세우면 우리는 경주가 문제가 아닌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1월 10일. 저녁 500km 야간 주행.
해가 뉘엿뉘엿한 산줄기와 산줄기 사이의 와디(마른 강바닥)를 50km나 달려왔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낄낄거리며 흉을 보았다.
서울과 부산보다 먼 거리를 마르고 험한 강바닥으로 만 밤새워 달려야 한다.
또 엊그제처럼 먼지 속 지옥의 대접전을 벌여야 한다.
낯익은 해가 한 뼘 정도 하늘에 남아 있을 때 향수같이 아쉽고,
깊은 오지로 들어가고 있는 낯설은 외로움을 억제할 수 없었다.
456km. 260˚로 방향 수정.
허물어 내리는 돌산 사이의 와디에는 제법 마른 나무도 자라고, 야생 낙타가 키를 재며 잎을 먹고 있었다.
척박한 와디 안의 나무들은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李箱의 나무의 시가 생각난다. 저 마른 강바닥에서 끔찍히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나무들,
이편과 저편의 고만고만한 거리에서 목마름에 서 있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저 몸짓과 침묵도 내가 모를 무슨 말을 저희들끼리 건네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들이 요란히 지나간 조금 후, 밤이 오면 그네들은 우리들이 씌운 먼지를 툭툭 털고
무슨 일을 은밀히 시작할 것 같다.
505km. 샘 하나로 산 아래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사는 토인 부락을 지났다.
부락을 한참 지나, 차에서 내려 볼 일을 보고 있는데 인기척이 있어 돌아봤더니 아무도 없다.
기분이 오싹했다. 조금 있다 또 소리가 나 뒤돌아 훑어봐도 아무도 없다.
벌떡 돌아서 고함을 질렀더니, 몇 명의 아이들이 저쪽 나무 위로 잽싸게 숨어 올라갔다.
나는 차에서 레이션을 꺼내와 나무 밑으로 다가갔으나 좀처럼 경계심을 품고 내려오지 않았다.
과자 몇 쪽을 던졌더니, 그걸 조심히 주워 보고 그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그들의 손을 잡고 어루만졌다. 나무를 깎아 바퀴까지 만든, 장난감 자동차를 밀고 다니며
수줍게 시위하는 놈도 있다. 가지고 온 헌옷들을 나누어 주며 아이들 얼굴을 자세히 보니,
어둠침침한 속에서도 참 섬세하고 잘 생겼다. 손과 맨발은 굉장히 두꺼운 각질이 생겨 있었다.
학교도 없는 이 아이들이 갑자기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 마음 속으로는
‘에이, 병신아! 니가 더 불쌍한 놈일지도 몰라. 저 애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게다가, 너는 아무 데나 대고 오줌을 싸듯,
아무 데나 대고 너와 비교해 보려는 교만함까지 있는 놈 아니더냐...
나는 자책하며 자괴감에 고개를 흔들었다.
567km, 밤과 오지 속으로 계속 들어가고 있다.
바람이 없는 골짜기 굽이마다 우리가 피운 먼지로 막혀 있었다.
20~30분 전에 지나간 앞차가 피운 먼지로 시계가 10m도 안 되었다.
우리 차는 칠흑 같은 어둠도 대낮같이 밝히고 시속 170km까지 달릴 수 있건만
먼지로 더럽혀진 밤은 하이빔을 켜면, 오히려 먼지가 반사되어 시계 제로가 되어 버린다.
깊은 모래와 박힌 돌덩이, 라디에(깊은 구덩이)와 크레파스의 연속, 이곳은 완전한 지옥이다.
강 양편은 험한 골짜기와 울창한 숲, 이 강바닥 밖으로 도망 칠 길이 없다.
아직도 300km가 남았으나, 나 자신의 나약함과 무능함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멈출 수도, 달릴 수도 없다. 이럴 때 고장이 나거나, 차가 빠지게 되면 큰일이었다.
굽이굽이 오지 속으로 뒤틀려 들어가는 와디 숲 너머에는, 토인 부족 마을이 군데군데 숨겨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창을 들고, 옷을 입지 않고 있다.
현대 문명과 차단된 채, 태고적 삶을 그대로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멀리 보이는 숲속 너머 지펴진 불빛을 지나칠 때마다 먼지 가득한 마른 침이 넘어갔다.
이 카레이스에 도전하는 레이서들은, 달려야 하는 지표가 험난하다는 데 대한 매력과
생명을 내놓고 원시 속의 모험을 한다는 데 대한 동경에서 참가하고 있으나,
이 오지 속에서 만약 자동차 고장이나 사고로 차가 멈추게 될 때,
그 부근의 적개심이 강한 부족이 앞을 가로막으면 자동차 경주는 차후 문제이다.
우선 삶과 죽음과 문명에의 회귀 여부는 마을 추장의 심판에 맡겨진다.
그런 위험은 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마찬가지다.
깊은 모래와 웅덩이의 상태는 갈수록 험하여 지고,
먼지 속 우리의 시력과 체력은 반비례하여 떨어지고 있다.
마른 입 속은 열기와 모래 먼지로 끈적인다.
차가 벌써 3번이나 크레파스에 곤두박질치며 빠졌다, 나왔다를 했다.
차의 앞쪽이 깨진 것같다.그건 문제가 아니다.우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차의 모든 불을 끄고 머리 전등만 비추며 모래를 퍼내고 깔개와 담요를깔았지만
한참 후에는 그마음 마져도 이미 비워져 있어 겁도 없어졌다.
오히려 한편, 숲 너머 들짐승을 통째로 끼워 불을 지피는 듯한 멀리 그네들 초막 주위로
마음이 맴돌며 불과 원시에로 향하는 향수를 억제할 수 없었다.
돌 사막 공략 중인 주자. 기자들은 우리가 가장 힘들어 하는 코스에 숨어 우리가 뒤집어 지기를 바라며 사진을 찍었다. 못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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