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모래 골짜기에 갇혔다가 빠져나온 내 차. 이제 태극기도 반이 넘게 모래 바람에 닳았다. 아깝다.
나는 매일 마음속으로 "조상님들...사하라로와, 죽을지도 모르는 단군자손 한명을 도와 달라"고 절규했다.
1월 10일. 오후 2시.
오도가도 못하게 된 우리는 주위의 지형을 면밀히 읽고 의논한 후 비장한 승부를 걸었다.
예서 끝나면 대망의 다음 해 우리 차와 우리 팀의 참가는 수포로 돌아 가게 된다.
내가 이 경주를 하며 쌓은 경험으로 작전과 전략을 만들지 못하면
우리나라 차와 사람은 앞으로 상당 기간 아무도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또 나 같은 천방지축의 한국 후배가 나와 어려운 이 경주를 참가하여 기술을 체득할 수 있을 때까지
이 파리 다카르 대회는 한국인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경주 방법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90분 동안 모래를 치우고 축대를 쌓고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네 바퀴의 바람을 1kg이하로
압력을 줄여 지면 접착을 최대화했다.
차가 25˚경사 둔덕만 거슬러 준다면 마의 구렁 옆면으로 180˚타고 돌아 내리는
반동으로 뒤쪽의 낮은 등성이를 타기로 했다. 차의 진로를 지표에 줄을 그어 표시해 두고
나는 경사 위쪽에서 차의 후미 오른쪽에 밧줄을 묶고 밧줄을 내 허리에 감았다.
시모나는 보조 운전석 쪽으로 살얼음 밟듯 들어가 운전석에 앉았다.
나는 해를 보고 감히 쳐다볼 수 없는 하느님을 불렀다.
‘병신같이…그렇게 자주 부탁하다니…미안하지도 않니?’
나는 자책했다.
저속 4륜 구동 1단, 차는 제자리에서 납작해진 타이어를 움직이기가 힘이 드는지
전신을 떨다 맹렬히 모래를 뿜으며, 틀리듯 오르듯 미끄러지는 사투를 하더니
낙타처럼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차는 휙 아래로 몸을 돌리고 25˚의 경사 옆면으로 내리더니, 그 반동을 타고 능선을 향해 비벼 올랐다.
‘하느님, 뚜아렉족의 하느님… 감사합니다.’
내 꼴은 먼지와 땀으로 또 범벅이 된 만신창이가 된 채, 등성이 정상에 쭈구려 앉아
구겨진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시모나의 모래 운전 솜씨를 칭찬해 줘야 할 것 같다.
나의 효험 있는 기도를 여러 번 과용하게 한 것도, 절벽 앞에서 날 죽었다 깨어나게 한 것도 그이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차의 바퀴 바람을 뺀 것도 위험천만했지만 주효했다.
내 차를 살리고 나니 비로소 우리 주위에 수십대의 차가
이 골짜기 오르막 곳곳에 빠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난리 천국이다.... 서로 자기들을 도와 주기를 소리치며 간절히 바라다,
자기 차가 빠져 나오면 뒤도 안 보고 도망해 버린다. 의리 없는 것들…….
약 4km 언덕을 힘겹게 올랐다가 급경사에 내리꽂히고, 그 반동으로 오르고 미끄러지며
큰 모래산 줄기를 넘었다. 골마다 차들이 처박혀 있었다.
일본 시티즌(Citizen) 팀도 거의 90˚에 가까운 비탈에서 반동으로 공중에 튀어 올랐다
다음 접지 때 앞바퀴만 갖다 찧어 앞바퀴 두 개가 찌그러져 내려 앉아 있었다.
“정열적인 키스를 했군. 입이 완전히 깨져 버렸어… 이빨까지 말이야. 짜아식.”
일본 팀을 향한 시모나의 빈정거림이 얄밉다.
“넌 무슨 심보가 그러니? 이곳 사막 강도 놈들이 너보다는 낫겠다.”
두 일본 경주자들은 나 처럼 먼지 범벅을 한 채 타는 듯한 햇볕 속에 쪼그리고 앉아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 참....측은하기 그지없다.
촌음이 아까운데도 나는 시모나에게 차를 세우게 하고, 그들에게 가 손을 잡고 다친 데를 묻고 위로했다.
다른 나라 파일럿들보다 일본 파일럿들이 낙오될 때 마음이 더 안됐다.
이제 그네 젊은이들은 나의 멋진 경쟁자이고 동정 가는 친구이다.
옛날, 나는 무조건 일본이라면, 일본 사람이라면 미워했다.
유학 시절에는 마치 애국이나 하는 것처럼 그네들을 이유를 걸어 몇 번 실컷 두들겨 준 적도 있었다.
빼앗긴 자의 자성의 소리는 미미하게 들려 주었고,
피해 의식을 미주알 고주알 대물림 받은 우리 한국 젋은이들의 구겨진 인간성이 세계로 나아갈 때,
당해 보지 않은 나라의 마음보 넓은 젊은이들과 어깨를 겨룰 방법을 우린 이제 이야기해야 하리라.
우리 젊은이들끼리….
방향을 잃고 나서 절벽 너머의 대평원 쪽 피스트 흔적을 찾고 있는 불쌍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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