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주자들이 조난이 두려워 몰려 다니며 방향을 의논하지만 그것은 소용 없는 바보 놀음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자 거리 계산과 방향 선택을 하는 것이 주효하다.세상에 이런 자동차경주가 또 있을까...경주중 길잃는 걸 밥먹듯 해야하니...ㅉ ㅉ
1월 10일. 양떼구름. 덥다.
총 주파 6,614km. 오늘 구간 다르쿠- 아가데즈 855km.
아침 8시 17분. 양탄자 같은 모래가 끝없이 펼쳐졌다. 하늘에는 양떼구름이 남북으로 갈리어 있고 눈부신 햇빛.
어제의 지옥 같은 날에 비하면 고진감래 격이었다.
평균 방향 270˚~280˚. 사하라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간 많은 우리네 동료들이 사하라 종단 중,
사고와 조난으로 대열에서 떨어져 나갔다.
매일 비박 장소에 도착하면 세계적인 레이서들의 낙오 소식과 슬픈 이야기들이 들렸다.
이제부터는 스피드와 인내의 대질주다. 여기까지 버티어 온 우리 차와 우리들은 햇빛과 푸른 바람을 보고,
하느님께 감사한다. 아프리카 지역마다의 토속신들에게도….
나는 유럽에서는 예수님을 믿고 아랍에서는 알라신을, 극동 우리나라에서는 부처님을 열심히 믿는다.
소외된 이곳 그들의 토테미즘도 왜 믿으면 안되랴.
서로를 이단시하는 극단론자들보다 마음이 편하고, 그들 모두가 다른 지역, 다른 이름으로 똑 같은 한 분을
나처럼 믿고 있으리라. 하느님을 명석한 머리로 찾아 내 신만이 최고라 하면 싸움뿐이다.
그 때문에 중세 수백년 동안 같은 하느님을 믿으며 싸워 수천만이 죽었다.
머리 써서 하느님 믿다가 말이다. 하기야 내가 조금 이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내 이름 종림 이니셜 J.R대로 친구들은 내게 지랄이라 부르고 조금 배운 원시인이란다.
124.05km. 초막 한 채 옆에 샘이 나타났다. 샘은 바위 밑으로 깊고 넓었다.
시모나에게 한 두레박 주었더니, “빠르륵, 빡, 빡….” 하며 닭이 날개를 털고 도망하듯 샘 주위를 돌았다.
주위는 사막 뿐이었다.
203km. 모래 상태가 양호하여 차 안에서 레이션을 먹었다.
극도로 긴장하여 달릴 때가 대부분이어서 종일 우리는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우리 주자들의 극도의 긴장과 신경 상태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그것이 장시간 계속되면 근육이 굳어 오기도 한다.
때문에 이미 우리 주자들은 다른 운동으로 체력을 보강해야 하고 집중력 훈련을 따로 해야 한다.
나는 집중력 단련으로 참선을 최고의 방법으로 하고 있다.
달리면서도 우리는 시간만 나면 차 안에서 쥐처럼 먹고 농담을 하고 욕을 해댄다.
생명 놀음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경주자들은 폭 넓은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고 입은 험하다.
순간을 긴장을 풀 수 있는 자구책이자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천성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들 몇이 모이면 배우나 코미디언이 따로 없다.
서로들 5분도 못 되어 말을 놓고 십년지기처럼 된다. 그리고 그들은 나만 빼놓고는 다 부자다.
242km. 수백 개의 부드러운 모래 능선을 파도 타듯 넘고 있다. 멋지다.
카세트 속의 먼지를 털어 냈더니 삐걱거리며 로드리고 2악장이 나왔다.
시모나는 쌍안경으로 지형 관찰을 하고 있는 나에게 ‘롬멜’이라고 진작부터 부르고 있었다.
“진정 내가 롬멜이라면, 넌 은근히 나보다 높은 히틀러가 되고 싶은 모양이구나.
네놈은 콧수염까지 길러 영락없이 히틀러야.”
이런 빈정거림으로 가끔 사막이 웃을 정도로 모래판에서 엎치락뒤치락 사자 새끼 놀음을 한 판씩 한다.
248km. 평균 방향 240˚로 수정. 좌우는 모래산 줄기 정면 80km 지점에 검은 산맥이 가로 막고 있다.
시속 180km. 태양이 오르고 사막이 데워지면 쌍안경 사용이 점점 어려워진다.
아지랑이 현상으로 전방 5km 이후부터는 산들이 남태평양 뉴 캘리도니아 군도의 수많은 모래섬처럼
파란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그 너머 숲이나 마을이 보일 때도 있다. 신기루이다.
352.30km. 1번 체크 포인트를 지난 후 모래산을 넘어가다 진퇴유곡.
뒤로 후진하면 맞은 편 둔덕으로 오르려던 차는 자꾸 후미가 틀려 내리며 사방이 막힌 구렁 아래로 밀렸다.
정면 오르막으로는 차가 오를 능력이 없어, 왼편 30˚경사 둔덕 쪽으로 길을 만들고 깔개를 깔았다.
그러나 그것도 실패였다. 아이쿠… 창자가 거꾸로 되면 환장이라 했지.
그걸 몇 번 하고 나니 속에서 불이 날 것 같았다. 난리 지옥이었다.
15m 아래 저 구렁 속으로 차가 내려가 버리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움직여 보려고 하면 할수록 차는 밀려 내리기만 했다. 예서 우리의 장정이 끝나야 하나!
그 동안 여기까지 총 6,111km 주파했다. 200여 대의 차종이 이미 낙오한 것에 비하면 그래도 장했다.
하지만 차를 사장하는 일을 상상만 해도 내 몸을 땅에 묻는 것 같았다. 미치고 말거나… 여기까지 왔는데…….
유럽 최고의 포뮬러 선수 여러명이 이 대회에 참가하였으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사고를 당하여 유럽으로 후송되었다.
넘어져 다쳐 병원이 없는 이곳에서 유럽으로 후송되는 동지들을 매일 밥먹는 것보다 더 많이 본다,갓 떼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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