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고난 차를 보고 차에서 급히 내려 뛰어갔으나 파일럿과 내비게이터는 이미 후송된 후였고
차 주위에는 잔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파일럿이 죽은 것을 나중에 알았다.
1월 8일. 새벽 3시.
별이 반짝이는 소리만 나고 천지는 태고적 나를 보고 있다.
가스 버너에 커피 물을 올려 놓고, 우린 그 자리에서 잠들어 버렸나 보다.
3시간은 넘게 잤다. 개운한 몸은 놀란 토끼 모양이다.
560.30km. 400m 앞까지 대낮처럼 비추는 우리 차의 헤드라이트 하이빔 불빛 앞에
241번 주자 차가 비참한 형태로 전복되어 있었다.
단단한 모래땅 구덩이를 튀어 오르다 지표 접착에 실패, 그곳으로부터 150m 정도
전후 좌우로 수십 바퀴 긁은 자국이 나 있고, 차의 모양은 형체가 없었다.
부디 경주자들이 살았길 바란다. 새벽 별이 하늘 위에서 눈물 물방울처럼 초롱거린다.
아프리카의 하느님…!
605.62km. 사막 중간중간에 가시나무가 어둠을 휘감고 한 그루씩 서 있다.
물도 없는 곳에 신기하다. 우리 꼴이 어둠 속 잽싼 도둑 고양이 같다.
그 도둑 고양이를 피해 어둠과 바람은 지평선 앞쪽으로 맹렬히 도망가고 있다.
680km. 방향 135˚. 무한 시계. 태양이 사막 위로 쏟아지고 있다.
피곤하게 굴러 가고 있는 차를 눈부신 광채의 사막 위로 불끈 올려놓은 것 같다.
도착 지점이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검은 타이어 표적물이 쌍안경에 들어왔다. 정확했다.
멋진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차 안에서 둘러쳐진 구명 파이프를 두들기며 환호했다.
나침반 방향을 잘 잡고 있는 줄 알았으면서도 2시간 이상 지형 지물이 없는 사막을 달리다 보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는 기분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하늘 아침 속
벌을 닮은 햇빛이 쏟아진다.
어디메서 조각난 모임.
생명빛을 다한 사막에서
이슬의 영감은
바람이 뚫어 간 금빛.
이처럼 아름다운 것을
생성한 날을 사랑하여
내 무게가 별것 아니어
소리쳐 이뿐인 기쁨이여.
8시 14분. 알리트 도착. 급유와 레이션만 받고 바로 다음 구간으로 출발(밤을 새워
비박장소에 도착한 차는 도착시간을 본부 심판이 체크 후 바로 출발선에서 출발시킨다.)
오늘 구간, 알리트-알브르 티에리 사빈. 692km; 스페셜.
차의 일반 점검을 못하여 염려가 된다.그러나 잠은 3시간 사막 모래판에서 잔 것이 큰다행이다
사막속의 사막 이 떼네레 사막에서 어떡하던 살아,빠져나가야한다.
53.85km. 2개의 돌산 사이에 나 있는 지그자그 코스로 만만찮은 지세였다.
우리는 얼른 차에서 내려 밑으로 기어 들어가 충격제동피스톤(업소브) 4개를 급히 갈아 끼웠다
도회지에서는 몇 년을 타도 고장 나지 않는 완충 장치 피스톤을 거의 매일 갈고 정비를 한다.
차가 얼마나 튀고, 날며 충격을 받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이 완충피스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차 하부 전체가 충격으로 내려 앉을 수 있는 위험도 있지만,
그 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미끄러져 커브 돌기’에서 정확한 회전각 감이 오지 않는다.
갈아 끼우는 시간 41분 소요.
107.50km. 조그만 마을 앞을 지났다.
마을 어귀에는 새까만 사람들이 몰려나와 있었다.
반은 입고 반은 다 내어 놓은 몸으로 모두가 맨발들이었다.
종일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갈 우리들 대열이 저 사람들에게 민망스러워진다.
271.80km. 굴곡 심한 모래 표면을 만나 차는 기절할 듯이 소리를 내며 힘들어했다.
293km. 모래에 빠짐.
324km. 모래에 빠짐.
372km. 모래에서는 완전 정지를 하면 안 된다.
정지한 차가 조금만 잘 못 움직여도 80~90%는 모래에 빠지게 된다.
일단 빠지면, 두어 번 빠져 나오려 하다가 안 되면 더 깊이 빠지기 전에
삽으로 모래를 퍼 내고 깔개를 깔아야 한다.
또, 깊은 모래 공격 시, 일단 차가 조금이라도 전진하고 있으면 절대 기어 변속이나
엑셀러레이터의 눌림 강도를 줄이면 안 된다.
엔진이 깨지는 소리에 기죽지 말고 미미한 전진이 계속되는 한 끈기 있게 밀어 붙여야 한다.
후-미치겠다... 목에서 단내가 난다.
483.20km. 마지막 체크 포인트에서 일본 경주차 미쯔비시의 차가 모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태극기 달린 내 차가 도착하니, 그 부근에 있던 TV 카메라 기자들이 집중적으로 내게 몰렸다.
차에서 내려 볼 일을 보고 있는 내 등 뒤까지 와서 촬영을 했다.
“엇! 에미, 뭘 찍어!.”
나는 화가 치밀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몽고족 오줌 누는 것 처음 봤소?”
“ 하 하...그래...처음 봤소.”
기자놈 대답 한 번 고약하다.
“사실은 그걸(오줌 누는 걸) 찍은 게 아니고 당신 등에 쓰여진 글씨를 클로즈 업 했소.”
나는 이미 많은 나라 기자들과 비박 장소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대부분 유럽 기자들 이었다.
그들은 한국 팀의 참가에 예상 외의 호기심과 관심을 가졌다.
돈 많은 부자 나라들만 할 수 있는 경주라서 그럴 것이다.
나와 인터뷰한 기자의 반 정도는 우리가 아직도 미제 차나 수입 외국 차를
쓰는 걸로 생각하는 얼간이들이었다.
“여보, 말 좀 조심히시오. 한국이 호박으로 보이오?”
그들의 그런 무지는 나에게,
“한국이 오히려 구미 쪽으로 연간 수십만 대씩이나 수출을 하고 있는 실정이고,
그것도 동구권의 그런 싸구려 차가 아니라 순수 우리 기술로 최고급 승용차를 만들고 있소.”
하고 열변을 토하게 만든다. 그들 모두 놀란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올해 왜 일본 차를 가지고 나왔소?
그리고 다음에는 한국 차를 가져 온다는 데 무슨 차종을 가지고 나올 거요?”
4륜구동 짚차가 한국에 있느냐는 등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해 댄다.
하지만 세계 최장의 이 대회에 한국인이 참가한다 함이 자랑스럽고
본래 촌스러운 나이건만 각국의 매스컴들이 나와 태극기와 찍어 가는데 기분 나쁘지 않고,
이제 제법 근사한 포즈까지 취해 준다.
607.50km. 전진 방향 185˚. 평균 시속 160~180km.
하늘에는 흰 구름이 세시(여인들의 얼굴 가리개)처럼 걸려 휙휙 지나고 있었다.
사하라 하늘색은 고국의 하늘 보다 색이 훨씬 여리다.파란색이 아니고 하얀 푸르댕댕이다.
지금 우리는 사하라동남부의 마지막 종단 코스를 죽을 힘으로 달리고 있다.
내일부터는 사하라 횡단 8,000km가 시작된다.
오전 6시 43분 도착.
에제 저녁 마지막 확인장소 Check point인 비박장소에 도착 못해 13시간37분 페날티를 받았다.
어제 1위로 도착한 차와의 시간차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걸 합산해 1위 주자보다 72시간 이상 차가 나면 강제 퇴장이다.
우리 차는 벌써 1위 주자 보다 20시간이 넘었다.엠병할...
수천 수백여 km 멀리에서 기름을 싣고 온 니제르 장사들이 모래밭에 드럼통을 눕혀 놓고 팔고 있었다.
기름 200L에 4600프랑, 엄청난 값이었다.부르는 것이 값이다.
선물을 주고 값을 깎은 것이 그렇다.
여기는 주위 오아시스로부터 수 백 km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이다.
작년 대회 때 이 대회 대회장 티에리 사빈(Thierry Sabine) 씨가 대회를 관장하던 중,
헬리콥터 사고로 이 곳에서 죽었다.
이 외딴 사막에 한 그루의 신기한 고목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를 사빈의 나무로 명명하고,
그의 뼈를 이 곳에 뿌렸다.
하여 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대회 본부측에서 이 곳을 8번쨰 코스 귀착점으로 했다.
나는 불이 올라오는 목구멍에 아카텔사(社) 비행기 냉장고에서 꺼내온
얼음 같은 찬 맥주를 단숨에 반 병이나 삼켰다. 살 것 같다.
그런데……이제는 속에서 다른 불이 지펴져 올라 온 몸으로 퍼져간다. 갓 떼믓...
달리고 있는 나에게 손을 들고 세우기에 내렸더니 노인이 배를 잡고 아픈 시늉을 하였다.
나는 차에서 우황 청심환과 소화제를 주고 황급히 떠났다. 노인의 얼굴을 보니 내 약으로는 안 될 중병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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