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이야기-첫번째
 
작성일 : 13-02-08 14:54
사하라 일기: '조난의 두려움이 더 큰경주'넷째 날
 글쓴이 : 최종림
조회 : 3,947  
1월 4일. 맑고 건조함. 모래 바람.

구간은 자르다이아-엘 골리아 455km. 파리로부터 2338km 주행. 알제 남쪽 1,048km 지점.
아침 7시에 기상. 커피와 치즈 한 쪽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그간의 접선 구간(Liaison)은 한정 시간 내에 도착 장소에 들어오면
페날티(Penalty; 한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만큼 늦게 출발시키는 벌점제)만 받으면 되는
가벼운 것이었으나 오늘부터는 스페셜 구간(Special; 주행 시간 채점)이다.
 
1초라도 더 빨리 달려야 하는 본 경주 구간이다. 1초라도 더 빨리 달려야 하는...
 

8시 5분 출발. 연료 240L, 일반 점검 및 각종 계기 점검 오케이. 전진 방향 235°.
주행로는 피스트(Piste: 차가 지가가면서 저절로 생긴 길)로 자갈과 굴곡이 심했다.
 
안전 벨트를 단단히 죄었으나 차가 튈 때마다 몸과 의자 사이가 흔들려 충격이 오고
눈알까지 흔들리는 고통을 느꼈다.
 
시속 90km에서 110km 속도로 달리면 수많은 구덩이 끝 부분만 타이어에 닿아 공중에 떠 있는
시간과 땅에 닿는 시간이 반반씩 되게 되어 있다.
 
만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차가 붕붕 뛰면서 달리는 장면이 계속되었다.
 

앞으로 갈수록 피스트의 흔적은 엷어지고 막 우리들 앞을 지난 몇 줄의 차 바퀴 흔적만 남아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항법사(NAVIGATOR)는 시계로 구별되는 노면 상황과 상태를 충고하는 것을 비롯하여
노선책(ROAD BOOK)을 정확히 읽고 목표물 거리 계산, 나침반 방향 제시를
순간 순간마다 경주자에게 지시해 주어야 한다.
 
항법사의 거리 계산과 시간마다의 나침반 방향 수정에 조금의 오차라도 생기면
차는 꺼낼 수 없는 모래 늪으로 들어가거나, 멀리 지평선 너머 엉뚱한 곳으로 가다 조난 당하게 된다.
 
그 때는 차를 움직이지 말고, 구명 깔개를 펴놓고 구조될 때까지 예비 타이어부터 본 타이어까지 태우며 검은 연기를 하늘 높이 올리고, 밤에는 불을 지피는 수단밖에 없다.
 
송수신 라디오는 대회 규정에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수십 배가 넘는 이 넓은 사하라에서 구조 비행기가 우리를 못 찾으면
그로써 생을 사막에서 끝내야 한다.
 
그러한 일이 설혹 우리에게 발생하여도 나는 구차한 눈물을 흘리지 않기로 했다.
유서 한 장은 이미 내 품에 있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고 싶었던 내 꿈이 이루어 지고 있는 이 순간,
무엇이 두려우랴,온몸의 흔들리는 무게대로 마음이 전율하고 있다.
 
한 평생을 선하게 살아온 노인처럼 죽음을 담담하고 곱게 맞을 마음의 준비는
내가 여태 살아온 만큼이나 귀중한 자세이리라 생각한다.

34.50km 지점. 나침반 230°로 수정.
 
자동차가 지나가며 가로로 일률적으로 만들어 놓은 딱딱한 모래톱(Tole) 시작. 피스트 외곽 주행 금지.
38.35km. 차는 시속 100km로 모래톱 위에 떠 있는 현상 계속. 피스트 외곽 주행 계속 금지.
차는 지그자그의 커브를 주행하는 데 거의 60~70°의 방향을 꺾어야 했으며, 그 때 마다 5~6m씩 미끄러졌다.
 
TV 헬리콥터가 우리 위를 2바퀴 선회한 후 사라짐.

47.04km. 나침반 240° 수정. 흰 모래 계속. 하씨 엘 하자(Hassi 티 hadjar)의 폐허 된 보루 왼쪽으로 선회.

64km. 수많은 모래 무덤 시작. 곳곳에서 차들이 모래 무덤에 얹힘.
“최대한 모래 무덤을 돌아라, 방향 190으로 바꿔!”
나는 끝없이 전개되는 상황을 시모나에게 고함쳤다.
 

81km 지점. 전방 100m 앞 급경사 모래 언덕.
 
15m 언덕 아래로 미끄러진 후 골을 가로질렀다. 건너편 흙 모래산, 우측 편으로 공격했으나
골의 커브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시모나로부터 핸들을 받았다.
 
후방 50m까지 넉넉하게 후진, 4륜 구동 저속 보조 기어로 갈고, 2단 기어로 최대 엑셀러레이터,
좌편 35° 경사의 자갈 모래산으로 공격. 중간에서 1단 기어로 바꾸었으나
정상 4m 정도를 남기고 오르기를 멈추었다.

우리 차 우편에 푸조와 닛산 등 5,6대의 차가 모래에 빠져 깔개와 삽으로 작업을 하며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왼편 산을 향한 나의 세 차례 공격도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화가 난 나는 차를 주먹으로 한 대 갈겼다. 손만 아프다.
한참 공격 지형을 의논한 후 다시 시모나에게 핸들을 넘겨주었다.
 

내가 방금 공격한 전방 35°경사, 좌편 15°경사를 시모나는 두 번째 공격에서 아슬아슬하게 차를
기울이면서, 기울어지는 쪽으로 곡선 커브를 그리며 시도하여 성공했다.
 
그는 이 대회에 8회째 참가하는 직업 레이서답게 능숙했다. 소요 시간 1시간 10분.
언덕을 내려가며 둘이는 손바닥을 마주치면서 목을 빼고 늑대 울음 소리를 냈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겨운 우리는 크게 음악을 틀었다. 모짜르트 교향곡 40번 중간 부분이 나왔다.
십년 버릇대로 나는 멋진 지휘자가 됐다.

92km. 시속 20~60km로 달릴 때가 가장 몸이 많이 상하게 되어 있고
심리적으로도 가장 불안한 상태가 된다. 자동차 경주에서 이 속도로 달려야 하는 것이 답답하지만
지표가 굴곡이 심해 그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이 속도를 낼 쯤의 모든 경황이 차를 가장 잘 넘어뜨린다.
우리는 2시간 이상 이런 상태로 달리다 갑자기 절벽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추었다.
발끝을 가시로 간지는 전율이 온 몸으로 주욱 퍼져왔다.

차를 뒤로 빼 좌회전하여 절벽을 따라가다 모래가 모여 비스듬히 생긴 라디에
(Radier; 자동차가 지나가기 어려운 상태의 여러 가지 지표 상태)를 타고 코끼리처럼 밀려
내려가는 데 성공했다.염병할...모래산을 미끄러져 내리는 것이 자동차경주라니...

150km부터 구간 끝.
 
지루한 터덜거림에 머리가 멍청해지고 엉덩이와 허리에는 감각이 없어졌다.
해가 지고 있었다.
 
뿔뿔이 흩어져 오다 황야에서 같은 목표 지점으로 방향을 정한 우리의 대열이 내는 수십km의 먼지가
지평선으로 구름처럼 피어 오르고 있었다.
 
큰 고장으로 멈춰서 뒤에 따라오고 있을 보조차를 애타게 기다리는 차량, 그리고 차가 부서져
아예 경기를 포기하고 구조 신호(X표 사인을 다른 경기 주자가 받으면 대회 본부에 도착하여 알림)를 하고 있는 주자들이 측은하게 먼지를 덮어 쓰고 있었다.

차가 일으키는 거대한 먼지와 정면으로 내리는 석양 때문에 시계 구분이 힘들고
그 와중에 절벽이 또 나타날까 하는 불안감의 연속으로 나는 많이 지쳐 버렸다.
 
운전석을 시모나에게 넘기고 모래로 그득한 입 안을 인삼 가루를 탄 물로 씻어 내었다.
 
후! 정신이 든다.
광막한 하늘의 거대한 덮개로 대지는 서서히 하늘 아래로 강아지처럼 깔려 안겨오고,
그 대지 어디쯤 한 곳을 어지럽게 달려 가는 지친 심신은 금방 고개 묻고
의식 세계로부터 잠시 멀어져 가고픈 안식이 내린다.

“아직은 금물이다. 조금만 더 달리자.”

졸음을 쫓으며 지도 읽기를 잠시 멈춘 나를, 그냥 놔두고 시모나는 혼자
어두운 계곡 아래 종착지의 피스트가 확인된 곳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황무지 계곡을 몇 개 돌고 나니, 이미 경주를 포기하고, 두고 간 오토바이와
빈 차 주위에 드문드문 모여 있는 터번을 두른 사람들이 보였다. 마을이 가까워져 오고 있는 것이리라.
 
아프리카, 아랍의 하느님…! 인 샬라...
 

가면 되는 길로 오는 길
처녀의 젖 무덤처럼
더듬어 낸
사하라 4만리
새벽길 혼자,
넘어지지 않는 일이
별것 아니어, 민망한 저녁
내일도
길 없는 그 길로 가리라.
달리다 나도 넘어지는 날
내 혼은
휭하니 사막으로 날아가
모질어 아름답게 자리한
가시덤불에 걸려
바람이 불 때마다
여인의 하얀 세시처럼
어릴 때 날아간 연처럼
파아란 하늘에 날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