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이야기-첫번째
 
작성일 : 13-02-08 14:42
사하라일기, 둘째 날 '비자도 없이 알제항으로 입국'
 글쓴이 : 최종림
조회 : 3,535  
1월 2일 바르셀로나. 맑음.

새벽 3시 50분, 바르셀로나에 도착, 거리엔 골목마다 경찰이 나와 길을 안내하여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부두에서 밤을 새워 가며 우리를 환호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오늘 알제리로 가는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게 된다.
잠을 한숨도 못 자고 차와 우리의 승선 수속을 했다.
3,000km 이상의 북아프리카 첫 코스가 알제리에 있는데 불행히도 알제리는
친 북한 노선으로 우리 나라와는 외교 관계가 없는 나라다.
 
하여 나는 우리들 대열 가운데 유일하게 알제리 비자를 받지 못했다. 파리의 알제리 대사관에서는 대뜸,

“북에서 왔소?”

하고 물었다. 내가 남쪽이라고 했더니 나의 비자 신청 서류조차 보기를 꺼려했다.
이 대회를 주관하는 막강한 대회 조직 본부 측이, 프랑스가 자랑스럽게 개최하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는 각국 선수와 팀을 당사국과의 외교 관계로 거부한다 함은,
알제리 정부의 비자 시비에 좌지우지되는 감이 있고, 또 국제 스포츠 교류 정신에 엄연히 위배된다 하여 세계 자동차 스포츠 연맹과 프랑스 측 내무, 외무부에 진정을 하고 알제리 쪽으로도 전문을 보냈다.
 
물론 파리의 우리 대사관에서도 나를 많이 도와 주었다.
 
대회 본부 측은 이 대회에 작은 한국인이 참석함을 감탄해 마지 않는 터였고
특히 동양에서는 일본 일색으로 판을 치는 상황이어서 내게 많은 호감을 갖고 있었다.
대회 회장인 질베르 사빈느 씨와 재정 담당 책임자 쟈크 씨가 알제리 세관 책임자에게
서약서를 적고 난 후에야 나의 입국이 허락되었다.

5년 전에 만들어진 내 여권에는 알제리를 뺀 모든 나라를 여행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하여 나는 이 배짱과 억지스러운 알제리 입국이 우리 나라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닌가 망설여지기도 했다.

나는 파리 제 4 대학(소르본느 대학)을 유학하며 태권도 사범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온 터였고,
당시 우리 나라와 외교 관계가 전혀 없었던 중동과 남미, 그리고 동구 공산권까지
내 선배들이 작은 한국인의 매서운 주먹을 시범으로 보여 주고,
그나라 정부 수뇌의 총해를 받아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더러는 이미 뿌리 박힌 일본의 가라데의 현지 패거리에 장살 당하기도 하고 총에 맞아 죽어 가며
그 나라에 한국을 심고, 그 다음 통상 대표가 태권도 사범에 의해 그 나라에 소개 받아 들어갔고,
그 다음 영사관이 들어간 경우도 있다.

외람된 말이지만 한국 외교사에 한국 태권도의 활동 사항이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을
나는 아직도 의아해 하고 있으며, 그 엄청난 어려움과 희생을 당한 생생한 선배 제위들을 위해서는
한국 태권도 외교사를 책으로 만들어 외교사 어디에든 비집어 넣어지길 바란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또 앞으로 13,000km의 죽음을 각오한 사하라 종단과 횡단의 길목 앞에서
용기를 잃지 않으려고 쓸쓸해지는 마음을 추슬렀다.

오후 2시, 우리를 태운 3대의 거대한 페리호 선박은 알제리를 향해 바르셀로나 항을 떠났다.
나는 이틀 동안 2시간 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12월 31일 송년에는 그간 나의 장정을 보살펴 준 프랑스 현지 한인회와 성원해 준 친구들과 함께 보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송년과 새해 맞이를 나의 발대식과 곁들여 하느라고 새벽 1시까지 있다가
2시간 정도 눈을 붙인 후,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눈 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선실로 들어가 기도를 했고 알제리 비자가 현지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바라며 잠에 떨어졌다.

“주여, 당신의 땅을 놈들이 네 땅, 내 땅 하는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